히혼국제영화제의 주인공이 된 홍상수 감독의 <수유천>
지난 11월 23일 폐막한 제62회 히혼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32번째 장편영화 <수유천>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또한 같은 영화로 여자 주인공인 배우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2관왕를 달성해 한국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히혼국제영화제는 1963년 스페인 북서부 도시 히혼(Gijón)에서 해마다 열리는 작가주의적 영화제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제에서 출품되는 작품들은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영화들이라고 평가받는다. 올해 영화제에는 75개의 스페인 자국 영화 및 다양한 외국 감독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주최 측에 따르면 20일 입장권이 매진되면서 관객들의 반응이 어느 해보다 뜨겁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명예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감독 미겔 고메스(MiguelGómes)는 영화제 참석과 수상에 기쁨을 전하며 "좋은 영화를 공유할 수 있는 영화제인 만큼 영광스럽다. 사실 독립 및 작가주의 영화의 경우 상업 영화에 비해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면서 다른 시선으로 제작된 여러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국제영화제의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김했다.
< 홍상수 감독의 '수유천'을 소개한 제62회 히혼국제영화제 - 출처: 히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
이번 영화제의 총 감독을 맡은 알레한드로 디아즈는 60년 넘게 개최되고 있는 히혼국제영화제는 '화려함'과 '레드카펫'이 필요 없는 '획기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는 영화제 개막 전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화려함과 레드카펫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단지 액세서리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영화에 대한 토론이 오가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더 위험하고, 더 도발적이며, 정치적으로 헌신적인 영화, 세상을 알리고 일반적으로 상업 극장에서는 상영되지 않는 영화'를 지지한다는 그는 배급사에서 고려하지 않은 많은 영화가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밍된 후 극장에 진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의 말처럼 거대 제작사의 상업 영화가 아닌, 극장 개봉이 어려운 영화들은 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돼 관객들을 만나 호응을 얻고, 이후 극장 스크린에 올라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다. 한편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재능 있는 신진 감독을 발견하고 영화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것에도 큰 역할을 해낸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아스투리아스 신진 감독들의 36편의 영화를 소개하면서 문화, 경제, 사회 방면의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지역 영화제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 수상 목록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최우수작품상의 홍상수, 여우주연상의 배우 김민희 - 출처: 히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
홍상수 감독과 히혼국제영화제의 인연은 깊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로 최우수작품상을,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로 여우주연상, <강변호텔(2018)>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강변호텔> 수상 당시 《EL MUNDO(엘 문도)》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히혼국제영화제의 사랑에 대해 "히혼은 서울이 아니지만 그럴 자격이 있다. 홍상수에 의해 두 도시는 하나가 됐다."며 "한국인의 소주 사랑으로 헤어져있지만 '시드라(아스투리아스주의 대표적인 술)'를 발견한다면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홍상수 감독의 이전 영화들에는 항상 소주를 마시는 장면과 술에 취한 이들의 대화가 오가는 데 이를 통해 소주가 한국의 대표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새 장편영화 <수유천>은 이번 히혼국제영화제를 통해 스페인 관객들에게 처음 공개됐고, 수상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현지의 영화인들에게 각인시켰다.
홍상수 감독은 이로써 히혼국제영화제에서 세 번째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스페인 언론들은 "마에스트로가 영광을 되찾았다."며 "홍(감독)의 정신을 담은 유난히 강렬하고 심오한 영화"라고 영화 <수유천>을 극찬하기도 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 속에서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때로는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준 여주인공 '전임'을 훌륭히 소화해낸 배우 김민희의 연기에 대해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 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케이팝을 선두로 한 한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 전, 홍상수 감독을 필두로 한 몇몇의 감독들이 영화를 통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것에 크게 한몫하기도 했다. 여전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많은 현지 영화 팬들의 그의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고 있다. 이번 히혼국제영화제에서의 성과가 스페인 극장에서 <수유천>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진출처: 히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https://ficx.tv/en/
성명 : 정누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페인/마드리드 통신원]
약력 : 현)마드리드 꼼쁠루텐세 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