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부다페스트에 둥실 떠오른 단청, '손의 연대기: 김수연의 모던 단청' 전시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4.09.30

부다페스트에 둥실 떠오른 단청, '손의 연대기: 김수연의 모던 단청' 전시


긴 여름휴가가 끝났다. 가을을 맞이하는 부다페스트 시내는 축제 준비로 들뜬 분위기다. 국회의사당 인근 광장 서버드샤그 테르(Szabadság tér)에서 8월 29일에서 9월 3일까지 열리는 '2024 부다페스트 맥주 축제(Budapest Beer Festival 2024)'를 시작으로 부다 성 인근에서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부다페스트 와인 축제(Budapest Wine Festival)' 등 전통적인 유럽식 축제로 부다페스트 시내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빈다.


오후 일찍부터 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시내를 조금 벗어난 9월 5일 저녁 6시. 부다 지역 프랑켈 레오 30-34 거리에(Frankel Leó út 30-34) 있는 전시장에는 우리네 옛 궁궐에서 보던 단청 문양이 다가오는 한가위를 기리듯 보름달처럼 둥실둥실 떠올라 있다. 전시장을 찾아온 헝가리인들은 생활용품을 활용해 작업한 여러 단청 작업을 보며 만지고, 체험하며 연신 즐거워하는 모양새다. 헝가리인들로 인산인해는 이룬 전시장, 둥실 떠다니는 금문과 도마, 쿠션, 됫박 등 생활용품에 재현된 다양한 한국 전통 단청들, 그리고 그런 관람객을 지켜주는 듯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사신도가 한곳에 어우러져 또 다른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 단청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헝가리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주헝가리한국문화원 기획전시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는 주헝가리한국문화원(원장 유혜령, 이하 문화원)이 기획한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채색 예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손의 연대기: 김수연의 모던 단청' 전시 오프닝 모습이다. 전시는 오프닝을 마친 다음 날인 9월 6일부터 1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서울무형유산 단청장 전승 교육사이자 공예가인 김수연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법주사 대웅보전, 쌍계사 대웅전, 광화문, 백담사, 신흥사, 창덕궁 관람정, 제주 관덕정, 경복궁 소주방 복원 등과 같은 주요 궁궐의 전각들과 전국의 사찰, 사원, 누각 등에 참여한 바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전통 건축을 채색하는 기능을 넘어 독자성을 가진 예술의 한 형태로서 단청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시간'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다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된다. 작업의 뿌리이자 영감의 근원인 단청을 소개하는 '시간의 교차: 기술과 예술로 엮인 궤적'을 시작으로, 단청의 원형성을 일상의 대상(오브제, object)에 소개한 '시간의 누적: 전통과 현대의 누적', 격이 높은 목조건물에만 그릴 수 있는 금문(비단 무늬를 의미)을 설치 작업으로 선보인 '시간의 흐름: 금문의 변주'를 선보인다. 이후 단청의 물질적 속성과 체험을 강조한 '시간의 여백: 풍경의 숨결'과 '시간의 확장: 낯설고 익숙한 감각'으로 이어진다.


<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듯 다양한 금문을 설치 작업으로 재현한 '시간의 흐름: 금문의 변주'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한국 전통의 목조 건물 장식 중 하나로 2차원의 평면에 재현됐던 금문을 원판에 재현해 3차원 공간 가변성을 가진 '장소 구체적(site-specific)' 설치 작품으로 선보인 '시간의 흐름: 금문의 변주'는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마치 과거 오랜 세월 목조건축물에 갇혀 있던 단청이 현재로 소환돼 3차원 공간에 봉인된 듯한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작업 속 오브제가 갖는 여러 겹의 윤곽선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윤곽선은 깊이를 희생시킨다(A single outline sacrificesdepth)."고 말했다. 그렇다. 캔버스 속 하나의 윤곽선은 대상(object)을 2차원에 평면에 가두면서 실제 대상이 갖는 3차원의 입체성을 박탈한다. 이는 마치 캔버스에 사물을 박제하듯 생명력을 앗아가는 느낌을 준다. 김수연 작가의 이번 작업을 보며 세잔의 작업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2차원의 공간에 박제돼 있던 단청을 3차원의 공간에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그녀의 뛰어난 예술가적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참고자료

- Merleau-Ponty,Maurice, “Cézanne’s Doubt”, in Sense and Non-Sense. Trans.Hubert L. Dreyfus and Patricia Allen Dreyfus.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64, p. 15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전) 한양대학교 강사,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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