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이즈미르 에게 지역 이색 문화 관광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9.05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문명의 터전이었던 아나톨리아(오늘날 튀르키예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에는 각 시대를 거쳐갔던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남겨놓은 문화의 흔적들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무더운 여름철, 통신원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에게 지역(Ege Bolgesi) 여러 곳에 현대 튀르키예인들의 생활 문화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과거의 문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81개의 주로 이루어진 튀르키예는 크게 7개 지역으로 구분한다. 에게 지역은 사계절이 있음에도 한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야채와 과일이 풍부하다. 기후의 영향을 받아 지역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튀르키예 81개 주 가운데 가장 여유롭고 긍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 아나톨리아 반도 내 에게(이즈미르) 지역 - 출처: Cografya Harita >

< 아나톨리아 반도 내 에게(이즈미르) 지역 - 출처: Cografya Harita >


통신원의 발걸음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즈미르 지역의 명소가 된 115년의 역사를 지닌 유대인 엘리베이터이다. 유대인의 엘리베이터는 튀르키예 행정 구역으로 코낙(구)에 속한 카라타쉬(동)에 위치한다. 유대인의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골목골목마다 세워진 건물들은 한 눈에 봐도 튀르키예인들이 주거하는 건물들과 쉽게 구분이 된다. 검은 석재라는 뜻을 지닌 카라타쉬 지역은 역사적으로 채석장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선과 그 위쪽 동네는 가파른 절벽을 두고 분리돼 절벽 위쪽 지역에 사는 사람이 일을 보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 절벽 너머 위쪽 마을로 가는 데비다스의 계단 - 출처: 통신원 촬영 >

< 절벽 너머 위쪽 마을로 가는 데비다스의 계단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지역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터키인들이 검은색 돌 계단이라고 부르는 이 계단을 '데비다스의 계단'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하루에도 일이 있을 때면 경사가 급한 이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오르고 내려가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1907년 유대인 사업가 네심 레비(Nesim Levi)가 건축한 아산쇼르(엘리베이터)는 지역민들에게 단순한 엘리베이터의 개념 이상이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에서 윗동네를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중요한 이동 수단이기 때문이다.


< 유대인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골목 풍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 유대인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골목 풍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사실 이 엘리베이터는 절벽 위 가장 높은 곳에 살고 있던 네심 레비 자신을 위한 용도였겠지만, 이후에는 필요한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지금은 해외 관광객들까지 찾는 이즈미르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게 됐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는 동안 흘러나오는 고전의 클래식한 음악들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오르면 아름다운 에게 해 바다를 배경으로 이즈미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더운 여름철, 잠깐만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몸과 정신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 이즈미르 지역 명소로 자리잡은 유대인 엘리베이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 이즈미르 지역 명소로 자리잡은 유대인 엘리베이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통신원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이즈미르 지역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보스탄르 파자르(7일장)'이다. 파자르는 현대식 건물의 쇼핑몰과 소형 마켓들이 즐비하게 세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인들이 꾸준하게 찾고 있는 것이 통신원에게는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파자르는 한국의 여느 재래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장 상인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늘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통신원이 찾은 보스탄르 파자르에서도 신선한 야채와 과일 등 튀르키예인들의 식탁에서 먹는 건강한 식재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 이즈미르 보스탄르 재래시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 이즈미르 보스탄르 재래시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시장에서는 모든 야채와 과일들을 킬로그램 단위로 판매한다. 특히 통신원의 눈에 들어온 몇몇 야채와 과일, 그리고 시장 먹거리가 있었는데, 과일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체리는 레드푸드의 대표적인 과일로 라이코팬과 안토시아닌이 들어 있어 건강에 매우 좋다고 알려져 있다. 1킬로그램에 25리라로 우리나라 돈으로 1,700원 정도이다. 시원하게 얼려 주스로 만든 오디는 무더운 여름철 더위를 잊게 해주는 제철 과일 주스이다. 튀르키예 에게 지역에서는 이처럼 신선한 과일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시원한 주스로 맛볼 수 있어 느껴지는 작은 행복이 있다.


< 튀르키예인들의 길거리 음식 ‘야프락 사르마’ - 출처: 통신원 촬영 >

< 튀르키예인들의 길거리 음식 ‘야프락 사르마’ - 출처: 통신원 촬영 >


대부분의 야채와 과일들은 우리나라 재래시장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곳 튀르키예에서만 볼 수 있는 길거리 간식거리들이 눈에 띄었다. 튀르키예인들이 시간와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어디서나 즐겨 먹는 ‘야프락 사르마’라고 부르는 음식이다. ‘잎을 말다’라는 뜻인 ‘야프락 사르마’는 생쌀과 야채, 향신료를 올리브 기름에 볶은 다음 양배추나 포도잎 등으로 돌돌 말아 찐 튀르키예 전통음식이다. 야프락 사르마는 1299년 오스만 제국이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 튀르키예인이 즐겨 먹고 있는 만큼 음식의 역사가 상당하다. 현대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같은 음식도 계속 진화하는 것이 현실인데, 특별한 요리법도 없이 투박한 옛 맛 그대로를 지켜가고 있는 튀르키예인들의 고집스런 음식문화는 통신원의 입맛을 과거로 회귀하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 이즈미르 남부에 위치한 ‘쉬린제’ 동네 - 출처: 통신원 촬영 >

< 이즈미르 남부에 위치한 ‘쉬린제’ 동네 - 출처: 통신원 촬영 >


그 다음으로 소개할 곳으로 이즈미르 남부지역에 위치한 셀축(구) 안의 ‘쉬린제’라는 동네이다. 이곳의 집들은 위에서 먼저 소개한 유대인들의 마을과 또 다른 분위기의 정취가 풍기는 곳이다. 마치 동화 속 마을과 같이 아기자기한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19세기 초 이곳은 그리스인들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수의 튀르키예 현지인들만 살고 있고, 상인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과 전통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 정착했던 그리스인들은 모두 자국으로 돌아갔기에, 현재 이 마을에 남아 있는 그리스인들의 후손은 한 사람도 없다.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19년부터 1923년까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 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 군이 독립 전쟁에서 그리스 군을 격퇴하면서 이즈미르 지역을 다시 되찾는다. 이후 안정화된 튀르키예는 스위스 로잔에서 일곱개 연합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그리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과 7개월 간 회의를 거쳐 조약을 맺으며 주권을 가진 공화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계기를 마련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위스 로잔조약이 바로 그것이다. 그 합의로 인해 그리스에 살고 있던 튀르키예인들과 튀르키예에서 살던 그리스인들이 서로 인구를 교환하는 이주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이 합의로 인해 튀르키예에서 거주하던 130만 명의 그리스인과 그리스에서 거주하던 50만 명의 무슬림들이 튀르키예로 이주했다. 그 후로 1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쉬린제 마을에는 100년 전 그리스인들이 남기고 떠난 아름다운 가옥들과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튀르키예인에게 쉬린제 마을은 전쟁 승리로 다시 되찾은 기쁨의 땅이었겠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양국 간 합의에 의해서 떠나야만 했던 슬픔의 땅이었을 것이다.


< 2천 년 전 건축된 에페스 대형원형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를 공연하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 2천 년 전 건축된 에페스 대형원형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를 공연하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통신원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에페스(Efes) 고대 도시 안에 세워진 대형 원형극장이다. 원형극장은 로마제국이 식민지로 거느렸던 국가들마다 동일한 양식으로 세운 것으로 거주 인구의 1/10로 건축을 했다고 전해진다. 약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의 규모로 볼 때, 에페스 지역에는 대략 20만 명의 시민들이 거주했었다고 추측된다. 건축은 비문을 통해 네로 황제의 통치 기간인 서기 54년과 68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로 거느리는 국가들마다 이와 같은 원형극장을 세워 검투경기와 연극, 공연 등을 펼치면서 시민들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에페스는 로마 제국이 소아시아의 수도로 지정했을 정도로 지리와 상업,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고 하니, 당시 원형극장은 시민들을 위한 오락과 공연들로 비는 날이 하루도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두고 있는 에페스 원형극장에는 지금도 연중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6월부터 9월 사이에는 대형 원형극장에서 튀르키예 국립오페라 발레 공연과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들을 직접 관람하면서 고대 유적지에서 색다른 현대의 문화 경험들을 할 수 있다. 통신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공연을 이곳 에페스 원형극장에서 관람했다. 에페스 원형극장으로 들어오는 좁은 도로는 저녁 9시부터 시작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 이른 시간부터 기다려온 관람객들의 차량들로 인해 모처럼 만의 차량 정체를 겪게 했다. 튀르키예 전국에서 온 관람객들은 마치 2천 년 전 에페스 도시의 시민이 된 것 같은 들 뜬 기분으로 긴 줄을 만들며 원형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트라비아타(Traviata)'는 정도를 걷지 않고 옆길로 새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길을 잘못 든 여자, 다시 말하면 타락한 여성이란 뜻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귀족을 상대로 가짜 사랑을 팔며 살아가는 여인 ‘비올레타’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청년 ‘알프레도’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튀르키예 국립오페라 공연단 배우들은 주인공에서부터 모든 출연진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하며 장장 세 시간 동안 이어지는 공연을 완성했다. 오페라 공연 피날레에서는 배우들의 굵은 땀방울이 무대 멀리까지 비춰져 모든 관객들이 기립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오랫동안 보내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공연을 2천 년 전 에페스 시민들이 앉아서 오락을 즐겼던 그 자리에서 들으니 통신원은 마치 로마 시민이 된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으로 무더운 여름철, 이즈미르 에게 지역 여러 곳을 돌면서 소개한 로컬 관광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통신원은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들이 지나가면서 남겨진 이색적인 건물과 음식들을 보며 에게 지역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서 좋았다. 독자들에게도 에게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유익한 장이 되었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 Cografya Harita 홈페이지, http://cografyaharita.com/
- 통신원 촬영


임병인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현) YTN Wold 리포터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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