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미주 지역에서 열린 <심청가> 완창 공연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11.09

한국에서야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 공연을 접할 기회가 있겠지만 미주 지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 꿈이 이루어졌다. 지난 10월 22일 오후 2시부터 반스달 극장(4814 Hollywood Blvd.)에서 서연운(미주예술원 다루 대표) 씨가 미주 지역 최초로 동초제 <심청가> 완창 판소리 공연을 선사한 것이다.


< 서연운 씨가 심청가 중 한 대목을 공연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서연운 씨가 심청가 중 한 대목을 공연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가장 긴 오페라 작품 중 하나인 <니벨롱겐의 반지(Das Ring)>는 4편으로 구성돼 나흘 간 공연된다. <라인강의 황금가락지(Das Rheingold)>, <발퀴레(Die Walküre)>, <지그문트(Sigmund)>,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순으로 총 15시간이니 각기 4시간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4시간이라도 혼자서 부르는 게 아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만 있는 부분도 많다.

이에 반해 서연운 씨는 심청이, 심봉사, 뺑덕어멈까지 모든 역할을 혼자 소화하며 5시간을 무대에 서면서도 숨이 차거나 소리의 갈라짐 한 번 없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서연운 씨에 따르면 단전에서부터 기운을 모아 소리를 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객으로서는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도 우렁찬 목소리로, 좌중을 뒤흔드는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서양의 오페라처럼 많은 출연진들이 다양한 의상을 입고 여러 세트에서 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소리, 북 장단, 너름새만으로 승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에 실은 다양한 감정이 어찌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지 단 한 순간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관객들도 소리꾼과 함께 울고 웃을 만큼 완전히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탄식 조의 소리를 하느라 잠깐 바닥에 앉은 서연운 씨, 우측에는 조용수 고수 - 출처: 통신원 촬영 >

<탄식 조의 소리를 하느라 잠깐 바닥에 앉은 서연운 씨, 우측에는 조용수 고수 - 출처: 통신원 촬영 >


전석 무료 초대인 공연은 1부 곽씨부인 어진행실-부친하직, 2부 범피중류-추월만정, 3부 이지호의 살풀이 무용에 이어 망사대 탄식-눈뜨는 대목으로 이어졌다. 북 장단은 한국 최고의 조용수 명고수가 담당했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eme)> 가운데 나오는 아리아인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의 가사는 알아도 <심청가>의 한 대목 가사도 모르는 통신원은 자신의 우리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공연 보는 내내 반성했다.  

서연운 소리꾼은 어떻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10살 무렵 길을 지나다가 어느 골목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소리를 홀린듯 따라 갔었는데 그때 들었던 소리가 바로 심청가였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로 하여금 판소리를 시작하게 만들었던 <심청가>, 그녀는 <심청가>를 40년 만에 완창하게 된 감동을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서연운 씨는 난석 이일주 명창(전북 무형문화재 <심청가> 명예보유자) 제2호 동초판소리 심청가 전수자이다. 서연운 씨에게 소리를 가르친 또 하나의 스승은 장문희(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심청가 보유자) 씨이다. 오랜 시간 미국에 거주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느라 정작 본인은 가르침을 받을 스승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서연운 씨는 지난 5년 동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장문희 선생으로부터 소리의 최고 기술들을 전수받아 소리를 더욱 완전하게 다듬어낼 수 있었다. 6살 때부터 난석 이일주 선생으로부터 동초제 소리를 사사받았던 심청가 보유자, 장문희 씨 역시 이날 제자인 서연운 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LA에 왔다.


제자의 공연을 보기 위해 LA를 찾은 인간문화재 장문희 - 출처: 통신원 촬영

< 제자의 공연을 보기 위해 LA를 찾은 인간문화재 장문희 - 출처: 통신원 촬영 >


"지난 5년 동안 서연운 씨가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저와 함께 <심청가> 완창을 준비했습니다. 미국에서 판소리를 완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서연운 씨가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네요. 제가 오히려 더 긴장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떨지도 않고 너무 잘해줬습니다. 제 가슴이 더 뭉클하네요. 서연운 씨가 척박한 미국 땅에서 이렇게 판소리를 완창하는 모습이 저에게 오히려 기운을 북돋워 줍니다. 오늘 공연을 보니 앞으로 LA에 동초제 전통 판소리가 널리 보급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 100% 몰입한 모습의 관객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 100% 몰입한 모습의 관객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제법 많은 관중들이 끝까지 남아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의 박수를 뜨겁게 보냈다. 객석 가운데 비한인이 있어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가사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5시간을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듣고 싶어서였다. 병원에서 수술 보조로 일하다가 은퇴했다는 다나 커리(Dona Curry) 씨는 대학 시절부터 록,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등을 연주하는 밴드의 베이스 기타 주자였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매달 2번 멤버들과 만나 연습을 하는 등 음악 활동을 쉬어본 적이 없다."며 "서연운 씨의 목소리와 노래의 멜로디가 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목소리만 듣고도 왠지 이야기의 장면이 상상될 만큼 소리가 비주얼하게 느껴졌고 노래에 실린 감정이 잘 느껴졌어요. 제게 한국의 판소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인데 서양 오페라와는 완전히 다른 문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 한국어 한 마디를 모르지만 공연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는 다나 커리 씨 - 출처: 통신원 촬영 >

< 한국어 한 마디를 모르지만 공연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는 다나 커리 씨 - 출처: 통신원 촬영 >


서연운 대표는 지난 2004년 미주예술원 다루를 창단해 전통 판소리의 뿌리를 이어오며 국악의 독창성을 널리 알려왔다. 미주국악경연대회를 창설했으며 전통창작그룹 '해밀' 단장, 미주 판소리협회장, 소리아트 다루 대표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4시엔 스텔라입니다.' 진행자 전)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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