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따뜻한 사랑방 [볼가람 한글학교] 재외동포 교육 방향과 특징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2.28

유럽에서 가장 긴 강으로 알려진 볼가강의 '볼가'와 강이란 의미인 순우리말 '가람'이 만나 2018년 12월 [볼가람 한글학교](교장: 심용보)가 탄생했다. 본교는 러시아 남부 도시 볼고그라드시에서 50km 떨어진 '베르흐네뽀그롬노에'에 있다. 전체 거주민 20%가 고려인들(약 200명)로 구성된 작고 평온한 시골 마을이다.


▲ 2018년 12월 22일 개교한 [볼가람 한글학교]와 2022년 10월 말부터 방과후 한국어 수업을 시작한 베르흐네뽀그롬노에 공립학교

▲ 2018년 12월 22일 개교한 [볼가람 한글학교]와 2022년 10월 말부터 방과후 한국어 수업을 시작한 베르흐네뽀그롬노에 공립학교


볼가람 한글학교에는 30여 명의 고려인 재외동포 학생이 열정적인 3명의 교사와 공부하고 있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고려인 조부모님과 부모님들 요청이 볼가람 한글학교 설립의 동력이 되었다. 2023년 개교 5년째를 맞는 볼가람 한글학교 문을 두드렸다.

본교는 현재 조부모님, 부모와 자녀들까지 전 세대를 이어주는 세대간 소통을 위한 사랑방이 되고 있다. 볼가람 한글학교가 고려인 재외동포를 위한 사랑방 역할을 꾸준히 감당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학습 대상자 연령과 수업 동기 등을 고려해서 학습 방향과 목표를 효과적으로 설정한 수업 전략 덕분이다. 러시아 작은 마을에서 고려인 재외동포들을 위한 자랑스러운 한글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볼가람 한글학교의 재외동포 교육 방향과 특징을 본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 수업 교육 방향과 특징

▲ 볼가람 한글학교[어린이반] 학생들의 수업 모습. 한국어 교재를 중심으로 한글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문화 교육은 한국어 수업의 연장선에서 진행하고 있다.

▲ 볼가람 한글학교[어린이반] 학생들의 수업 모습. 한국어 교재를 중심으로 한글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문화 교육은 한국어 수업의 연장선에서 진행하고 있다.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 학생 대부분은 그 지역에서 출생하고 자란 아이들이다.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에 비해 한국과 한글에 대한 노출이 적다. 교사들은 한글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와 한국어 습득 위주의 실질적인 수업을 정해진 학습 과정과 목표에 따라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한국어 원어민 교사는 이 학생들에게 앞으로 주어질 수 있는 한국에서 학업과 취업 기회에 관한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여행이나 일반적인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사례를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실제적인 수업을 교실에서 진행한다.

볼가람 한글학교 박소은 교사에 의하면, [어린이반] 수업은 취미 위주의 단순 흥미 주제보다는 체계적인 학습을 세분화하여 아이들이 한국인을 만나거나 한국을 방문하게 될 때 당황하거나 겁내지 않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어린이반] 수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한글 학습에 기초해서 자녀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학생 대부분이 고려인 조부모님들과 함께 한국적인 문화 배경 속에서 성장했으나 이미 이주 100년의 세월 속에서 조부모님 조차도 복합적인 문화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은 가족의 영향으로 한국인 정체성에 대한 기본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 다수를 차지하는 러시아 학생들과 러시아 현지에 살면서 외모적으로 다른 자기 모습을 보며 청소년기 특징인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볼가람 한글학교는 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강요가 아닌 스스로 한글 학습과 한국문화, 역사에 관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학생들의 열정으로 하루하루 한국어 실력이 늘어 한국어로 인사하고 소통하는 것이 교사로서 가장 큰 기쁨이다. 한국을 알수록 한국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교사로서 큰 보람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는 볼가람 한글학교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건강에 대한 염려로 [성인반] 학생 수가 감소했고 [어린이반] 학생들도 타지역으로 이사, 진학 등으로 학생 수가 줄었다. 새로운 대안을 고려하던 중 [어린이반] 학생 어머니가 근무하는 지역 학교 문을 두드렸다. 러시아 공립학교지만 지역적 특성으로 고려인 재학생도 많고 한국에 관심을 갖는 러시아 학생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소바 이리나 니꼴라예브나 교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첫 만남에 교장 선생님은 방과 후 한국어 수업에 흔쾌히 동의하셨다. 교실도 제공하고 직접 학부모 소식란에 볼가람 한글학교와 한국어 수업에 관해 소개까지 해주었다. 덕분에 2022년 10월부터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 수업은 지경이 넓어졌다.
기존 학생들은 토요일에 한글학교에서 수업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베르흐네뽀그롬노에 학교에서 러시아 아이들, 고려인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있다. 수요일반 학생들이 토요일 수업까지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다시 한글학교 수업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변 학교에 직접 찾아가 한국어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을 적극 소개한 교사들의 열정으로 볼가람 한글학교가 지역 사회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아이들의 한국 열정이 지속되기 위해 다양한 기회와 혜택을 주고 싶은 열망이 있다. 러시아 지방 도시 속 작은 시골 마을에 세워진 작은 한글학교, 그 시작은 미약하나 아이들의 창대한 미래를 기대하며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 수업과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볼가람 한글학교 [성인반] 수업 교육 방향과 특징

▲ 볼가람 한글학교 [성인반] 학생들 수업 모습. 주로 한글 학습보다 활동 위주 수업이 주류지만, 오랜 세월 잊고 있거나 처음 배운 한국어를 연필로 한 자 한 자 눌러 쓰는 재미가 있다.

▲ 볼가람 한글학교 [성인반] 학생들 수업 모습. 주로 한글 학습보다 활동 위주 수업이 주류지만, 오랜 세월 잊고 있거나 처음 배운 한국어를 연필로 한 자 한 자 눌러 쓰는 재미가 있다.


한글학교 수업현장


볼가람 한글학교 [성인반] 평균 연령은 60대 이상이다. 손녀, 손자들을 위해 지역 한글학교 필요성을 역설하던 어르신들이 학교 설립 이후 가장 적극적인 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열정과는 별개로 [성인반] 학생들은 건강상 이유와 시간적, 신체적 여건 등으로 한국어 수업에 집중력과 지속력을 갖기 어렵다. 초기 시행착오를 통해 학생들과 교사들은 한국어 수업에서 직면하는 여러 위기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성인반]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이며 신선하고 탄력적인 수업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그 후 성인 학습자들이 무엇보다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교육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
먼저, 과감하게 숙제와 평가 기준을 제거했다. 학습자 눈높이에 맞는 실질적이고 현실적 그리고 움직이는 수업을 구성했다. 특히, 한국 역사, 문화 수업을 '이야기가 있는 한국어'라는 주제로 바꾸고 흥미 위주의 수업 구성으로 참여도를 높이고 학습자들 관심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 역사, 문화 수업을 진행하면서 [성인반] 학생들 대부분이 현대 한국말은 아니지만 과거 부모님, 조부모님께 듣고 자란 '어떤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 수업이 공부가 아닌 이야기가 되면서 그분들은 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어가 서울말, 새로운 말, 제2외국어로 인식되던 부담감을 버리니 비로소 각자 자신들이 알던 고려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다.

고려말을 구사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니 저절로 수업이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더 나아가 각자 어릴 때 들었던 고려말을 기억해내서 서로 비교하며 경상도, 함경도, 전라도, 제주도 지역의 다양한 방언들을 대조하고 이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학습이 아닌 순수하게 학습자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일어났다. 교사들은 이 과정에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현재 볼가람 한글학교 [성인반] 수업은 즐겁고 활기에 넘친다. 앉아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놀이를 통해 한국을 배운다. [성인반] 학생들의 가장 큰 소망은 한국을 살아생전 단 한 번만이라도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이 소망은 현재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볼가람 한글학교 교사들이 제공하는 놀이, 건강, 역사, 문화를 통해 한국을 재미있게 배우면서 그 욕구가 충족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한 학습자 중심의 활동적 수업이 한국어 교육과 접목되면서 [성인반] 학습자들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학습에 대한 부담감을 최소화하니 오히려 자기 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을 경험하면서 다음과 같은 재외동포 성인 교육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교사가 [성인반] 학습자들의 상태를 적절히 파악하고 학습 진도를 재구성하고 학습 내용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다면 60세, 70세에도 배울 이유가 있는, 배울 가치가 있는 한국어 수업으로 변모될 수 있다.

거의 평생 흔히 생각하는 표준 한국어를 말할 기회조차 없던 [성인반] 학생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서울말을 배워야만 한다는 언어 정체성 강요는 한국어 학습 동기에 큰 장애물이 된다. [성인반] 학생들이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가족을 통해 듣고 자라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던 고려말을 끄집어내 주자 그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각자 사용하는 방언을 재미있게 풀어 접근하면서 고려인들 삶 속에 녹아있는 여러 문화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는 학습 방법이 지금 볼가람 한글학교 [성인반] 수업의 특징이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지속해서 흥미 있는 주제를 던져줄 수 있는 활동 수업에 관한 교사들의 창의력과 노력이다.


▲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 [성인반] 수업 풍경과 수업 이후 식탁 교제. 한글학교에 오고 싶고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개교 5년째, 볼가람 한글학교를 세대를 초월한 고려인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 [성인반] 수업 풍경과 수업 이후 식탁 교제. 한글학교에 오고 싶고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개교 5년째, 볼가람 한글학교를 세대를 초월한 고려인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볼가람 한글학교 [어린이반]과 [성인반] 수업 방향과 특징을 상세히 소개해준 박소은 교사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이 한글학교가 대도시에 생겼더라면 더 많은 학생을 만나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는 자부심은 이것입니다. 볼가람 한글학교는 이 작은 러시아 시골 마을, 바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통해 한국어가 이렇게 외진 곳에서도 효과적으로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와 사례가 되고자 합니다."

2월,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여전히 러시아 수은주는 영하 15도다. 유난히 춥고 힘든 이 겨울에 러시아 작은 시골 마을의 볼가람 한글학교는 고려인 재외동포들을 위한 따뜻한 사랑방이 되고 있다. 볼가람 한글학교 성장을 힘차게 응원한다.


♠ 사진 출처 및 내용: [볼가람 한글학교] 박소은 교사 제공







서지연
 러시아 서지연
 바로네즈한글학교 교장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상담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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