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인터뷰]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들려주는 올해의 한국 영화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4.05.24

[인터뷰]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들려주는 올해의 한국 영화


한국 영화에 관심 있는 스위스인이라면 늘 찾게 되는 프리부르국제영화제(Fribour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올해로 38회를 맞이한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는 49개국에서 출품한 100여 편의 영화가 소개됐고 5만 5,000여 명의 관객들이 참여했다. 사실 2000년대 후반 이후 스위스에서는 각종 영화제를 통해 간간이 한국 영화를 소개하고 있으나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는 매년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를 여럿 소개하며 팬심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영화제 국제경쟁 섹션에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유재선 감독의 <잠>,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 그리고 힙합 컬쳐를 주제로 한 장르시네마 섹션에는 임성관 감독의 <스웨그>가 소개됐다.


다음은 통신원과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조방(Thierry Jobin)의 인터뷰다.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한국 영화를 꼽는다면요?


사실 관객들은 매년 몇 편의 한국 영화가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각 지역에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서 다양한 한국 영화를 만나길 기대합니다. 한국 영화 특성상 공포, 액션, 미스터리, 심리극에 강한 인상을 풍기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도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 세 작품을 소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올해 국제경쟁 섹션에 선보인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프리부르국제영화제 관객들이 뽑은 영화 3위로 아주 좋은 호응을 받아 수상 후보작에 꼽혔던 작품입니다. 사실 원작은 네덜란드의 작가 헤르만 코프의 <더 디너>로 이미 극작품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세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허 감독의 작품을 베스트로 꼽아 봅니다. 작품을 살펴보면 한국 영화만이 가진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장면 하나로 분위기의 반전을 이끌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딜레마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런 방식은 다른 나라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하나의 딜레마가 영화의 전체를 장악하는 반면 한국 영화는 한 작품 안에 여러 딜레마들이 얽히면서 관객들에게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져 공감과 몰입도를 증폭시킵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는 모범적인 의사와 약간은 퇴폐된 변호사가 자식의 양육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관객들 역시 원칙과 도덕, 그리고 나의 한계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영화입니다.

< 정우성 감독의 '보통의 가족' - 출처: FIFF 제공 >


영화제 소개사부터 언급하신 (故) 이선균 배우가 출연한 유재선 감독의 <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영화 <잠>은 2023년 한국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2023년 칸영화제에 소개될 당시 꼭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지난 12월 생을 마감한 (故)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기 위한 영화로 올라 많이 안타깝습니다. 배우로서 아주 많은 재능과 가능성을 선보였던 그가 유럽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불미스러운 상황으로 한순간에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여전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입니다. 영화 <잠>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주 흔히 겪을 수 있는 '수면 장애'라는 소재를 활용해 공포와 긴장감을 조성시키며 이는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이어집니다. 유재선 감독의 탁월한 스킬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는 4DX로 영화제 내내 상영됐고 상영 때마다 매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프리부르는 스위스의 중소 도시지만 스위스에서 몇 안 되는 4DX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매우 기쁩니다. 4DX 상영을 통해 관객들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도 4DX로 상영하고 있으나 한국 영화만큼 그 특성을 잘 이용하지는 못합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한국 사회를 반영한 재난 영화로 보이지만 사실 세계적 문제인 사회적 불평등, 인간의 이기심과 도덕성을 이야기합니다. 유럽의 상황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국가에도 많은 난민이 유입돼 각국에서는 그에 대한 정책적 대응에 많은 애로사항을 겪고 있습니다. 영화 속 황궁 아파트 입주자들이 외부인에 대해 보이는 태도,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많은 갈등은 마치 난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는 듯합니다.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바탕으로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을 불편하지만 마주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엄태화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각색을 통해 한국 영화의 독창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오한 주제 의식이 깔린 가운데 노래방 기계, 불고기 파티 등의 장면을 곳곳에 삽입해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만드는 블랙코미디로 관객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 소개된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 - 출처: FIFF 제공 >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영화 <보호자>는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서 상영했던 영화로 사실 2023년 선보이려 했었으나 코로나19로 지연된 작품입니다. 관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고 저 역시 배우로서의 길을 걷던 정우성 씨가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제작한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첫 장편임에도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평범함이란 결코 쉽지 않다'는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조방(Thierry Jobin) - 출처: FIFF 제공 >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한국 영화 팬으로서 한국 영화인들에게 전하실 메시지가 있다면요?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인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그 외 여러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영미권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가미해 새로운 스타일로 각색한 작품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마치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과 같은 폭발적인 효과를 연출한다고 매번 느끼고 있는데 한국 영화인들이 위와 같은 점을 잘 활용해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선보이길 바랍니다.




사진출처

- FIFF 제공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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